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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현재, 유럽연합이 본격적으로 시행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탄소국경세)는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글로벌 무역질서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 간의 규제 충돌, 개도국의 반발, 한국을 포함한 수출국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며, 탄소국경세는 이제 국제통상 갈등의 최전선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탄소국경세의 개념과 목적, 미국과 EU 간 정책 충돌, 그리고 한국 수출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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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과 미국의 탄소 국경세 충돌, 무역전쟁 다시 시작?

    탄소국경세란 무엇인가 – 탄소에도 세금을 붙이는 시대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는 유럽연합이 주도하여 2023년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하고, 2026년부터 본격 부과할 예정인 새로운 무역세금입니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외국 기업의 제품이 EU로 수입될 경우, EU 내 생산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과하겠다는 제도입니다.

    이 정책의 핵심 배경은 유럽 내 기업들이 탄소배출권 거래제(ETS)를 통해 탄소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수입품은 그러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탄소 유출(carbon leakage)’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즉, 환경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값싸게 생산된 제품이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다면, 유럽의 친환경 전환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구조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탄소국경세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고탄소 배출 산업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입 기업은 제품에 포함된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 하며, 유럽의 ETS 시장 가격에 맞춰 탄소비용을 납부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제품 하나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조 원가 외에도 원재료 생산과 가공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량까지 투명하게 산정하고 보고해야 하며, 이는 기업의 회계 및 생산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탄소국경세는 단지 환경 정책이 아니라, 무역과 제조, 회계,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주는 포괄적인 글로벌 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충돌 – 친환경인가 보호무역인가?

    문제는 탄소국경세가 ‘기후 정의’를 위한 정책인 동시에, ‘경제 보호주의’로도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미국은 유럽의 CBAM 도입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출하고 있으며, 이를 자국 수출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스스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연방 차원에서 EU 수준의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州)별로 일부 탄소가격제도가 존재하지만, CBAM의 기준이 되는 탄소비용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은 유럽 수출 시 별도의 탄소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며, 이는 ‘무역 차별’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탄소국경세를 ‘신보호무역주의’의 일환으로 보며, WTO 체제와도 충돌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탄소세는 환경 명분을 내세운 조세이지만, 실제로는 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EU와의 협의를 통해 탄소국경세 적용에서 미국 기업을 제외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한편 유럽은 자국 내 산업 경쟁력 보호와 글로벌 기후리더십 강화를 이유로 탄소국경세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유럽연합은 “환경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가 가격경쟁력을 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탄소국경세는 환경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술패권, 공급망 재편, 산업 주도권 경쟁이 뒤섞인 복합적인 무역 충돌로 번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수출기업의 부담 – 회계부터 공급망까지 변화 필요

    한국은 EU의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이며, 특히 철강, 석유화학, 전자부품 등 고탄소 산업에 집중되어 있어 탄소국경세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국가입니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CBAM이 전면 시행될 경우 한국의 대EU 철강 수출에만 연간 수천억 원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첫 번째 영향은 탄소 배출량 계산 체계 구축입니다. 유럽 수출을 지속하려면, 제품별로 정량화된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이에 대한 데이터와 보고체계를 완비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인증을 넘어서, 회계 시스템과 ERP, 공급망 관리 체계까지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제품 경쟁력 약화입니다. 유럽 시장은 프리미엄 시장이지만, 탄소비용이 반영되면 제품 단가가 상승하여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치명적이며, 유럽시장 철수나 수출국 다변화를 고민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공급망 재편 압력입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중국, 동남아 등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하여 가공 후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원자재의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을 경우, 최종 제품에도 불이익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저탄소 인증을 받은 공급업체로 전환하거나, 자체 감축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도 적응을 위한 정부 지원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은 기업 대상의 CBAM 대응 가이드를 마련하고 있으며, 일부 대기업은 ‘탄소 회계 전담 조직’을 신설해 내부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 및 중소기업은 정보 부족, 인력 한계 등으로 적극 대응이 어렵고,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과 재정 지원이 시급합니다.

    결론: 기후 정의인가, 새로운 무역 장벽인가?

    탄소국경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정책이자, 무역 세계의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명분은 환경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패권을 좌우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EU는 ‘지속가능한 무역’을 앞세우며 제도를 정착시키고 있지만, 미국, 중국, 개도국들은 이에 대해 불공정 무역장벽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그 갈등은 향후 수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탄소 정보의 디지털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회계 시스템, 탄소절감 기술 개발, 그리고 다변화된 무역 전략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닌,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탄소국경세는 무역과 기후의 경계를 허무는 핵심 정책으로 자리잡을 것이며, 이에 대한 전략적 적응과 민첩한 대응이 기업과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